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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업소 및 식음시설

추천 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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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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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암구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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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막머리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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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자원

자연경관

항구
장봉항(명촌항), 옹암항, 대빈창항, 야달항
산림녹지
국사봉, 봉화산, 상산, 동그랑산, 거머지산
해변경관
옹암 해변, 진촌 해변, 한들 해변, 건어장 해변, 야달 해변, 유노골 해변, 사당바위, 노적바위, 독바위, 물결무늬 바위, 빗살무늬 바위, 파도무늬 바위, 소코바위, 굴바위, 쌍해식동굴바위, 작은 멀곳, 가막머리, 대빈창 등
해수욕장
응암 해수욕장, 한들 해수욕장, 진촌해수욕장
기타
가락머리전망대, 다락구지전망대, 국사봉정상전망대, 옹암구름다리, 말문고개구름다리, 무장애숲길, 장봉해안둘레길, 인어상, 제비우물, 유노골(윤옥골), 가막머리낙조대, 말문고개

생태자원

야생화군락지
옹진 신도 노랑부리백로와 괭이갈매기 번식지(천연기념물 360호 ), 노랑부리백로(천연기념물 361호 / 멸동위기 야생생물 1급 )

주요인물 및 문화자원

  • 김연산(金連山) (1884~1967)
    무의촌인 장봉 출신으로 치료조차 제대로 받아 보지 못하고 신음하는 주민들을 위하여 침술과 한방을 배워 고향 장봉으로 돌아와 일생을 마을 사람들의 병을 돌봄. 그가 죽자 도민들이 크게 애도하면서 장봉도민장으로 안장하였음
  • 김유니스(金유니스) (1877~1959) 
    본명은 김윤의로 장봉도에서 종교 활동을 했고 감리교 신학대학 장종철 명예교수의 조모임
  • 노연태(魯淵泰)
    장봉도 옹암에서 진촌, 평촌 간 10km의 좁은 고갯길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도로공사 비용 일체를 희사하여 장봉도의 대동맥 격인 도로를 개설하였음
  • 노윤태(魯潤泰)
    1964년 장봉도에 정착하여 무의도서(無醫島嶼)임을 안타깝게 여겨 미국인 슈벨즈의 협조를 얻어 도민 의료 사업에 크게 공헌하였음
  • 송두용(宋斗用)
    1967년 경제난으로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장봉도의 아동들을 위하여 중등과정인‘푸른학원’을 설립하였으며 2년 만인 1969년 운영난에 봉착하자 서울 집을 팔아 자금을 대는 등 1981년 13회 졸업생을 배출할 때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임
  • 윤기영(尹基永)
    1923년 장봉에 아동 교육기관인 장명신숙(長明新塾) 설립을 발기하고 20여 명의 아동을 교육하였음
  • 이동응(李東應)
    장봉도 최초 감리교가 들어온 옹암에 미국인 여선교사(혜시)가 설립한 옹암교회 초대목사로 시무하였음
  • 이승훈(李昇薰)
    고종 21년(1884) 한양에서 장봉도로 이주해 구한말 과거에 응시하여 진사가 되었으나 시국이 어지러워지자 관직 생활을 단념하고 향리로 돌아와 장봉도 교화에 헌신함
    1901년 대흉작에 도민구제를 위해 사재를 기울임을 기리고자주민들이 은공비(恩功碑)를 세웠음
  • 이정훈(李鼎薰)
    진사로서 1894년 장봉에 들어와 서당을 설립하여 후세교육에 힘썼으며, 신축년 대흉년을 당하자 사재를 털어 주민들을 구제함. 뒤에 주민들이‘진사이공정훈구황시혜불망비(進仕李公鼎薰救荒施惠不忘碑)’를 세웠음
  • 조용교(趙鏞敎)
    진사 이정훈(李鼎薰)과 함께 장봉도민 교화와 지역 발전을 위해 기여했으며, 1901년 대흉작 때에 이정훈과 함께 사재을 털어 주민을 구제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뒤에 주민들이 ‘전참봉조공용교구황시혜불망비(前參奉趙公鏞敎救荒施惠不忘碑)’를 세웠음
  • 임병덕(林炳德)
    1985년 장봉리 105번지 큰논꼴 마을 위쪽에 장봉혜림재활원을 개원하고 이듬해 3월 장봉혜림학교 6학급을 개교하였다. 장애 아동들의 공동생활에 필요한 기본 능력과 기초 직업 교육에 중점을 두어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 자활 능력을 키우는 데 주력하였음
  • 정수용(鄭壽鎔)
    1910년 장봉도 안산 중턱에 장흥학교(長興學校)를 설립하고 보통학교 과정과 고등과를 두어 보통학교 과정을 수료하면 고등과로 진급하도록 하였고 이후 1921년에 다시 5년제 영흥학교(永興學校)를 설립하여 3회 졸업생을 배출하였으나 북도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면서 폐교되었음
  • 최창준(崔昌俊)
    장봉도에서 출생했으며, 가선대부(嘉善大夫)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을 지냈으며 그의 묘지가 장봉리 산 90번지에 있으며, 정조 9년(1779)에 세운 묘비가 있음
  • 장봉도 봉화산 봉수터
    (長峰島 烽火山 烽燧址)
    북도면 장봉4리 산237 해발 130m의 봉화산 정상에는 서해 연안의 주요 봉수 가운데 하나였던 봉화산 봉수대의 연대(煙臺)였을 것으로 생각되는 일부 석축이 남아있음
  • 장봉도 형옥 터
    (長峰島 刑獄址)
    북도면 장봉2리 산75, 장봉도 형옥 터는 공동묘지 동남쪽의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는 구릉에 위치한다. 아직까지도‘옥당머리’라고 부르는 이곳에는 조선시대 형옥이 자리했었다고 전해짐
  • 띠뱃놀이
    고유의 민속놀이로 오색 원색의 만선 깃발을 펄럭이면서 사물과 함께 뱃노래를 부르며 어부들의 무사복락과 풍어를 기원함
  • 장봉도 당제
    장봉 1리와 장봉 3리에서 당제를 지냈으나, 1970년대 초 새마을 운동과 함께 사라졌다. 장봉 1리에서는 당산나무 앞에서 당제를 드렸다. 당산나무는 소나무였는데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당산 3리에는 당집이 있어 이곳에서 당제를 지냈다. 당집의 크기는 2간 정도였는데, 지금은 소실되어 사라졌음
  • 장봉도 당제
    옛날 장봉도 부속섬인 날가지 어장에서 어느 어부가 그물을 걷으니 인어 한 마리가 그물에 걸려 나왔다. 뱃사람들은 그 인어를 측은히 여기고 그대로 바다에 넣어 주었는데 그 후 그곳에서 그물을 치니 많은 고기가 잡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짐(1994년 인어상 설치) 
  • 가막머리
    옛날에 큰 봉우리라는 뜻의 '감악산' 끝의 머리라는 뜻으로 장봉도의 서쪽 제일 끝인 이곳의 명칭이 가막머리가 되었다. 예전에 감옥(監獄)이 있던 곳이라서 '감옥머리'라 불리던 것이 가막머리가 되었다는 설도 있음(고려 고종 18년에 몽고 침공 시 장봉도에 별궁과 감옥을 같이 지였다는 이여기가 전해짐)
  • 벚꽃 축제
    장봉도 벚꽃축제는 매해 4월 벚꽃 개화시기에 개최, 벚꽃길 걷기(옹암해변→말문고개(반환)→옹암해변으로 돌아오는 벚꽃길 걷기코스(왕복 4㎞)) 및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및 공연들로 구성되는 축제임

특산물/기념품

장소 주소 주요판매품
장봉바다역 내 특산물판매장 북도면 장봉리 20-28 마른 김, 망둥어, 바지락, 상합 등

낚시포인트 및 주요어종

 해양생태관 사진
절별 주요 대상어종 및 평균수온계
표층 : 12.8°C / 저층 : 12.3°C
대상어종 : 넙치, 노래미, 붕장어, 숭어, 우럭
여름
표층 : 27.2°C / 저층 : 25.9°C
대상어종 : 넙치, 붕장어
가을
표층 : 10.8°C / 저층 : 11.3°C
대상어종 : 넙치, 노래미, 숭어, 우럭, 망둥어
겨울
표층 : 0.8°C / 저층 : 0.8°C
대상어종 : 노래미

※ 자료출처 : 국립해양조사원